요즘 생산 현장에 한국 청년이 없다. 왜 생산직에 청년이 없을까? 임금이 잔업, 특근을 안 하면 200만 원 초반에 세금 떼면 200도 힘든 수준이다. 일도 위험한데 다른 서비스직에 비해 급여가 높지 않다. 임금을 제대로 안 주니,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생산직을 기피한다. 막상 취업해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젊은 사람이 이것도 못 하나”라며 반말로 대하기 일쑤다. 근무 환경도 최악이다. 인권 의식과 권리의식이 다른 교육환경에서 자라난 세대들이 견딜 수 없는 환경이다. 많은 사업장은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고, 부품이나 생산수단으로 여긴다. 이들은 결국 외국인 노동자들 쓰거나 그것도 아깝다고 불법 체류자 고용한다. 청년들은 서비스직으로 몰리고 30, 40대는 비교적 안전하고 정규직 채용 추세인 아파트 경비원으로 몰리고 있다. 이제 생산직은 주로 50, 60대뿐이고, 젊은이는 죄다 외국인이다. 문제는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이 더욱 높은 임금을 위해 쉽게 이직하고 자연스럽게 숙련도가 떨어진다. 특히 최근 건설 현장에서는 작업자에 의한 부실시공 위험도가 증가하고 있다.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으면 그 위협은 사업체에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우리
최근 넷플리스의 영화 ‘전, 란’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전, 란’은 임진왜란 당시,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이 선조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를 통해 당시 노비들이 어떻게 억울하게 노비가 되었는지, 선조가 비겁하게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을 그리고 백성의 고달픈 삶은 외면하고 경복궁 재건에 집착했는지를 보여주는 등 민심이 돌아서는 과정을 중요하게 보여준다. 그중 아주 드물게 흥겨운 장면이 나오는데 의병들이 소리 높이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그때마다 들리는 소절이 있다. 바로 “쾌지나칭칭나네”다. 이는 민요를 즐겨 듣지 않는 이들도 기억하는 후렴구다! ‘쾌지’라는 말은 후련하고 통쾌하다는 뜻이며 ‘칭칭’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장수 가등청정(加藤淸正)을 조소하여 부른 말이다. ‘나네’는 쫓겨간다는 의미로서 ‘쾌지나 칭칭 나네’는 왜놈 적장이 쫓겨가니 후련하고 통쾌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조롱의 노래며, ‘얼래리 꼴레리’의 어른 버전쯤 되겠다. 이순신 장군의 조선 해군이 드센 공격으로 가등청정을 비롯한 왜적들이 도망치게 되자 우리 병사들은 그 꼴을 보고 너무나도 통
1950년대 우리나라는 가난해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없었다. 신용호 회장은 독립운동 한 아버지와 형들이 탓에 가정형편이 어려웠고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 형편을 극복하기 위해 사업의 길을 걸었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상경, 이어 중국으로 건너가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고, 광복 후 맨손으로 귀국했다. 좋은 책을 만들어 국민 교육에 힘쓰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출판사를 시작했다. 책은 많이 팔렸지만,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출판사는 얼마 못 가 문을 닫게 되었다. 당시 교육열은 강한데 교육할 돈이 없던 것이다. 그는 국민의 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해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1958년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를 창립했다. 그는 직접 발로 뛰며 사람들을 설득하였는데,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담배 살 돈으로 보험을 가입하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라고 설득했다. 책의 진심이었던 그는 1980년 사옥을 건설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서점을 만들었다. 그것이 교육보험 문고 즉 교보문고였다. 서울 한복판에 돈 안 되는 서점을 만드는 것을 모두가 반대했지만,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들고 책을 사지 않아도 누
2023년 정부는 서문시장 100년 기념행사를 윤 대통령이 축사하는 등 거대하게 치렀다. 영남 기반인 보수 정권에게 서문시장은 특별한 곳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국정 지지도 하락할 때마다 여러 번 방문하며 보수의 사기 진작을 꾀했다. 그러나 그 서문시장의 상인은 전에 없던 불황을 겪고 있다. 이는 자신의 뿌리를 망각 부정하고. 보수 권력에 지지한 결과다. 사실 서문시장의 역사를 보면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한강 이남 최대 대시장이었다. 일제는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서문시장을 대구 3.1운동을 이끌던 원래 대구장 상인회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이전시켰다. 일제 치하에서 친일 상인들만 서문시장에 장사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방법도 잔인했다. 대구지역 단오제와 민족 영혼의 중심이 되었던 용왕신에게 제를 지내던 ‘천왕당지(天王堂池)’를 수천 년의 역사가 담긴 비산동 고분군을 파괴하여 나온 흙으로 메꾸어 없애버린 것이다. 또한 대구지역 최초의 의과대학인 동산병원을 방해할 목적으로 병원 앞에 시장통을 만들었다. 따라서 서문시장 100주년 행사는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일본이 한국 근대화 시켜줬다”라는 논리와 아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시민언론 들꽃 편집부
우리나라의 보수정권은 대기업에 친화적이며 늘 ‘부자감세’ 정책을 시행한다. 윤석열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윤 정부는 250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세수 감소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면서 '낙수효과'를 이야기한다. '낙수효과'는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윌 로저스(William Penn Adair Rogers 1879-1935)라는 영화배우이자 칼럼니스트가 1928년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던 미국 제31대 허버트 후버(Herbert Clark Hoover 1874-1964) 대통령의 대공황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을 비꼬면서 등장했다. 윌 로저스는 “상류층 손에 넘어간 모든 돈이 부디 빈민들에게도 낙수되기trickle down를 고대한다.” 결국 낙수효과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는 두 차례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미국 경제의 회생을 위해 레이거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을 처방했다. 이것은 부유층의 증대된 소득이 저소득층에게도 흘러내려 갈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했다. 그러한 믿음은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내리자는
한국의 산들이 예전부터 이렇게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지고 푸르렀을까. 결코 그렇지도 않았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의 산이란 산은 온통 벌거숭이 민둥산들이었다. 높고 낮은 산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시뻘건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비만 오면 홍수가 나고 토사(土砂)가 흘러내려 곳곳에서 일어나는 산사태는 그야말로 연중행사였고 예사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산이란 산은 모조리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도저히 가망이 없는 절망의 땅이었다. 1960년대 유엔식량농업기구 등의 국제기구는 개발도상국에게 산림녹화를 지원했다. 산의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돈을 지원하는 사업으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지원받은 돈을 다른 곳에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그 돈으로 탄광을 개발했다. 당시 한국은 나무로 난방을 했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어도 겨울에 다 베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탄광을 개발해 연탄을 보급하면 나무 대신 연탄을 사용하려는 발상이었다. 실제로 연탄이 보급되자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그 뒤에 나무를 심어 산림녹화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후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사업이 큰 역할을 한다. 흔히 산림녹화와 관련하여 박정희 신화를 이야기한